2025년 10월 19일 일요일

냉장고 정리하다가 내가 절약 못 하는 이유 알았다


자취를 시작하면 가장 기대되는 가전 중 하나가 ‘냉장고’였다. 슈퍼에서 사고 싶은 식재료를 마음껏 사서 채워두고, 밤에 출출할 땐 냉장고 문만 열면 뭔가 먹을 게 있어야 자취 느낌이 난다고 생각했다. 실제로 자취 초반엔 장도 많이 봤고, 뭐든 쟁여놓는 재미에 냉장고가 금세 가득 찼다. 그런데 이상하게도 냉장고는 항상 꽉 차 있었지만, 먹을 건 없었고, 장을 또 보러 나가야 했다.

어느 날 마음먹고 냉장고를 정리하면서 알게 됐다. 내가 절약을 못 했던 이유는 ‘지출’ 자체보다 ‘관리’가 문제였다는 걸. 냉장고 안에 있던 음식물 중 상당수가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거나, 존재조차 까먹고 있었던 식재료들이었다. 냉장고는 절약의 도구가 아니라, 낭비의 블랙홀처럼 변해 있었다.

무계획 장보기는 냉장고를 쓰레기통으로 만든다

장보기를 잘 하면 절약이 되지만, 계획 없이 보면 오히려 지출이 늘어난다. 나는 한동안 배고플 때 장을 보는 습관이 있었는데, 그럴 때마다 냉장고는 금방 넘쳐났고, 몇 주 후엔 유통기한 지난 식재료가 줄줄이 나왔다. 특히 두부, 숙주, 우유, 치즈 같은 유제품이나 신선 식재료는 며칠만 지나도 상하기 쉽다.

문제는 사놓고 뭘 만들지 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. 마트에서 ‘이건 싸니까’, ‘이건 언젠가 쓰겠지’ 하는 마음으로 샀던 물건들이 결국 냉장고 깊숙한 곳에 묻혀 있다가 버려졌다. 돈을 쓰고도 먹지 못한 것이다. 특히 내가 많이 버렸던 건 소스류였다. 고추장, 쌈장, 타르타르소스, 스리라차까지 별생각 없이 샀는데, 한 번 쓰고 그대로 방치된 경우가 많았다.

그래서 지금은 장을 보기 전에 반드시 냉장고를 먼저 연다. 남은 재료가 뭔지 확인하고, 그걸 활용할 수 있는 요리를 검색한 다음, 거기에 필요한 재료만 사러 간다. 처음엔 귀찮았지만, 한 달만 실천해도 확실히 음식물 쓰레기가 줄고, 식비도 눈에 띄게 줄었다.

냉장고 정리 습관이 소비 패턴을 바꾼다

냉장고를 ‘차곡차곡 쌓는 공간’으로만 쓰면, 결국 그 안에서 음식이 썩는다. 그래서 나는 정리 방법을 완전히 바꿨다. 우선, 반찬통이나 식재료는 투명 밀폐용기에 담아 내용물이 보이게 했다. 뚜껑 위엔 마스킹테이프를 붙여 보관 날짜를 적었고, 유통기한이 임박한 음식은 맨 앞줄에 뒀다.

또한 냉장실을 칸마다 용도별로 구분했다. 가장 위 칸은 바로 먹을 음식, 가운데는 조리 예정 재료, 아래 칸은 채소류로 나누고, 냉동실도 반찬/육류/간식으로 정리했다. 이렇게만 해도 장보러 나가기 전에 ‘뭐가 있는지’ 한눈에 확인이 가능했다.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‘주 1회 냉장고 점검’이다. 매주 일요일 저녁엔 10분 정도 시간을 내서 냉장고 문을 열고, 뭐가 남았는지, 뭐가 곧 상할지를 체크한다. 이 루틴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불필요한 장보기가 확 줄었다.

재밌는 건 냉장고 정리를 하다 보면 내 소비 습관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거다. 왜 비슷한 소스만 잔뜩 샀는지, 늘 남기는 반찬은 뭔지, 내가 평소에 어떤 식사를 반복하는지를 알 수 있다. 그걸 기반으로 식단을 짜고, 식재료를 정리하니 소비 패턴 자체가 건강해졌다.

냉장고는 자취생활의 중심이다. 잘 쓰면 절약의 핵심 도구가 되지만, 잘못 쓰면 버리는 돈의 무덤이 된다. 냉장고 정리는 단순히 청소가 아니라, 나의 생활을 돌아보는 일이다. 그 안을 제대로 들여다보면, 절약의 힌트가 분명히 보인다.

댓글 없음:

댓글 쓰기